글 작성자: 강혜정 선생님

 

내가 생각하는 이 시대의 노인은 약자이면서 강자다. 바다 역시 마찬가지다. 강자이면서 동시에 약자다.

요즘은 노화도 질병으로 보는 시대이지만, 이런 관점을 차치하더라도 노인이 육체적으로 쇠락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경험과 지식과 자본을 틀어쥔 노인의 권력은 젊은이의 그것에 비할 수 없다. 그는 더 이상 노인이되 노인이 아니다. 누가 빌 게이츠를 노인이라 부르는가?

바다는 오랜 시간부터 미지와 환상 혹은 공포의 영역이었다. 오죽하면 어선의 무사 귀환을 위한 인신 풍습까지 발달되었겠는가? 현재까지도 심해에 대한 인류의 지식과 정보는 보잘것없다. 하지만 동시에 바다는 인류의 쓰레기통이다. 온갖 쓰레기와 폐기물로 넘쳐나며, 이로 인해 고통 받는 해양 생물 관련 뉴스는 차고 넘친다.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적을 만든 원인도 영국이 소말리아 앞바다에 무단 투기한 쓰레기때문인걸 보면 인간의 몰염치하고 이기적인 행태는 약자를 향해 더 극렬해진다.

헤밍웨이는 왜 노인과 바다를 소재로 삼았을까? 그가 살아내야 했던 시대는 전쟁의 시대다. 전쟁은 인간의 이기심이 극대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최극단의 현실체다. 살육을 바탕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지만, 한편으론 경제가 부흥하고 의료 기술을 비롯한 과학이 발전하는 모순의 시대다.

헤밍웨이에게 노인과 바다가 가지는 모순의 이미지는 소설로 더할나의 없는 소재였음에 분명하다. 고기잡이가 가지는 모순(물고기를 사랑하지만 그를 낚아 생명을 영위해야 하는) 역시 매력적인 글감이었음에 분명하다.

내가 읽은 <노인과 바다>는 아이러니의 세계에서 살아 숨쉬는 인간의 정체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he said.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많은 독자들이 밑줄 친 문장이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는 말인데, 나는 인간 정신의 고결함보단 오만함의 역사를 읽는다. 짓밟아 말살시키는 사피엔스의 잔인함도.

If I were him I would put in everything now and go until something broke. But, thank God, they are not as intelligent as we who kill them; although they are more noble and more able.

자연은 더 고귀하고 능력이 있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던져 이를 파괴하는 영악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 우리는 우리의 행태로 인해 기인한 기후 환경의 대참사를 마주하고 있다. 자연이 인류를 포획하고자 하는 대반격이다.

소설에서 노인은 청새치를 포획하지만 상어들에게 뜯겨 뼈만 남겨 귀환하고, 소설의 끝은 사자 꿈을 꾸는 노인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는 과거의 죄값으로 청새치와 상어와 사자들에게 공격받는 인류일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가 더 이상 대어를 낚는 꿈을 꾸기보단 대어를 키우는 꿈을 꾸기 바라지만, 수미터가 넘게 자랄 수 있는 대구를 무분별한 남획으로 대서양에서 사라지게 만든, 이제 몇십 센티미터 크기의 대구만 태평양에서 잡을 수 있는 현실을 보면, 도저히 뭔가 바라기가 힘들다.

그래도 소소한 희망을 품자면, 분명 똑똑하고 에너지 넘칠 우리 반 아이들과 올 한해 열심히 손걸레질을 하며 쓰레기를 줄이는 습관을 다지면 되는거 아니냐 속삭여본다.

그냥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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