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의 교사와 교직』과 우리교육 4편(마지막)

 

북유럽이라는 유토피아

북유럽!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을 뛰게하는 단어다. 특히 복지국가에 낙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자전거 타고 다니는 국회의원과 든든한 복지로 높은 질의 생활을 누리는 현실의 유토피아가 흔히 생각하는 북유럽의 이미지다.

 

교육계로 한정해도 좋은 이야기는 끊이지 않는다. 과감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기반으로 한 교육개혁으로 유명한 핀란드 교육은 '학생 한 명 한 명을 존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덴마크 교육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교육'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스웨덴 교육은 '평생교육의 이상향'이라 불린다. 

 

하지만 환상을 깨야한다는 얘기 역시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다. 직접 살다온 사람의 르포가 누적되고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대한 연구들이 다각도로 이루어질 만큼 시간이 지났다. 자전거 타고 다니는게 환경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성비를 위해서라는 후문도 들려온다. 우리나라에서 '북유럽에서 유행한다는' 여러 교육적 제도나 정책을 이식하려 시도해보았지만, 시원치 않은 부분들이 여럿 발견된 것이다.

 

이는 북유럽 교육, 특히 핀란드 교육이 주목 받은 이유가 마냥 학생 중심, 행복 교육이라서가 아니라, "쟤들은 놀고 먹으면서 PISA(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1등했다더라!" 라는 웃지못할 상황에서 초래했다는 점에서 이미 실패를 노정했을지도 모른다. 

 

북유럽은 다같은 북유럽이 아니다.

 『북유럽의 교사와 교직』과 우리교육 1~3편 동안 연재해 온 내용을 읽은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북유럽을 구성하는 다섯나라 즉,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아이슬란드는 각각 서로 다른 전통을 지닌 개별 국가다.

 

막말로 우리나라도 동아시아교육 묶어서 중국 일본이랑 한국 다 유교 중심 문화고 똑같다고 해버리면 당장 눈살이 찌푸려질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나 다른데 굳이 그들이 한 뭉치로 여겨지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북유럽의 교사와 교직』은 이렇게 대답한다. "이상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라고. 유럽과 미국 그리고 소위 말하는 적당히 먹고 살 만한 나라들에서 복지국가 모델을 모색하게 되었고 현실의 모델로서 북유럽에 눈을 돌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필요에 의해 각색된 북유럽에 대한 해석은 북유럽에 대한 오해로 이어졌다. 마치 미국을 중심으로한 소비자본주의가 사치재로서 프랑스와 불어를 소비했던 것처럼 말이다.

 

한편 북유럽의 개별 국가들에서도 이에 호응한 움직임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전 세계적 관심은 북유럽의 여러 시민들이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종종은 이러한 마케팅을 즐기게 되었다. 그러나 저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북유럽식 국뽕(?)은 오히려 북유럽 개별국가들 스스로의 발전을 저해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북유럽의 교사와 교직』의 역자들은 각각 초등교사, 중등교사 양성기관에서 고등교육 종사자로 일하고 있다. 역자 후기를 통해 이들이 2023년 교사들이 겪어온 아픔과 그 국면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엘리트와 시민 사이에서의 부유하는 교사를 포착하고 교사 전문성에 대한 고민을 권한다. 그러한 그들이 책을 번역한 의도가 퍽 흥미롭다.

 

이들은 현실에 지친 한국의 교사들에게 북유럽이라는 달콤한 설탕 한 스푼을 넣을 것을 권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녹다운된 한국의 교사들이 북유럽이라는 유토피아 즉, 환상에 빠지는 것을 미리 경계하여 이 책을 번역했다. 다시 말해 현생이 너무 힘나머지 약장수들이나 사이비에 현혹되지 않게 하고자 북유럽의 실상을 먼저 알리고자 노력한 것이다. 

 

배울거면 진짜 제대로 알고 배워야 한다. 필자가 이해한 식대로 북유럽의 교육관련 지형을 한 줄로 정리해보면 이렇다. 4세기 백제, 5세기 고구려, 6세기 신라 하는 식으로 초기(1900~1930)엔 덴마크, 중기(1930~1990)엔 스웨덴, 후기엔 핀란드(1990~)가 전성기를 이뤘다. 아직 주목받지 못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도 있다. 이들이 북유럽 교육지형을 구성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이러한 관점을 토대로 북유럽 교육 논의를 이해하는 것은 이해를 풍부하게 돕는 수준이 아니라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정도다.

 

그러니 북유럽에 대한 담론은 북유럽 신화를 벗겨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곳에서도 교사는 참 어려운 직업이었다. 잘 난 줄 알았던 저 동네 교사들도 붕떠있었고 제 각각의 처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지구 어디서나 교사들은 억울하게 비난받고 있다. 제대로 정의되기도 어려운데 잘하는 당연히 어려울 밖에.

 

그러니 한국만 그렇다는 필요이상의 자학을 딛고 서로 건투를 빌어주며 장단을 주고 받는 노력이 필요하다. 북유럽의 장단이 아니라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의 장단을 각각 말이다. 여기에는 북유럽 국가들이 아닌 다른 국가를 넣어도 된다. 독일, 영국, 미국, 일본 등 그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우리에게 우상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오늘로 『북유럽의 교사와 교직』과 관련된 4편의 연재를 마친다. 시의성이 넘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역자 중 한 분인 김민조 교수님을 모시고 북토크를 진행하려 한다. 오늘의 글 역시 '교육언론 창'에서 연재된 역자 중 한 분인 유성상 교수님의 기고를 책과 함께 참조했다. 시간이 되시는 분은 함께 읽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이번 기획 연재를 반겼던 독자라면, 북토크에서 얼굴을 보며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참고: [유성상의 ‘한국교사’ 탐구 ➆] “북유럽교육은 우리의 빛인가?”

https://www.educh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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