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초·기본은 누가, 언제, 어떻게 할까요?

2022개정교육과정에서 ‘디지털 소양’이 언어소양과 수리소양과 함께 기본 소양으로 정착됨에 따라 교육과정에도 정말 많은 디지털 요소가 들어왔습니다. 초등기준으로 디지털 교육의 핵심 과목인 ‘실과’교과는 말할 것도 없고, 발표자가 제시해주신 대로 각 교과의 성취기준에서 디지털적인 요소를 정말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면 국어 교과에서는 연필 쥐기, 선 긋기부터, 모음과 자음을 하나하나씩 익혀가며, 수학교과도 한 자리 수의 수세기, 가르기, 모으기 활동부터 한 학기 동안 긴 호흡으로 언어, 수리 소양의 기초를 익혀가는데 반해, 디지털 기초·기본을 익힐 수 있는 시간, 방법 등은 정말 모호합니다. 학생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스스로 코딩을 할 수 있는 학생도 있고, 틱톡이나 릴스 콘텐츠를 만들어 SNS에 업로드 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어떤 학생은 컴퓨터 전원버튼 찾기도 어려워합니다. 디지털 소양의 기초·기본이라면 컴퓨터 전원을 키는 것부터, 키보드 타자 입력, 인터넷 접속, 아이디와 비밀번호 외우기, 자료의 저장, 공유, 프로그램 설치 등일텐데, 이런 교육을 누가, 언제,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특히 디지털 교육 및 디지털 사용에 대한 각 가정의 허용치 및 공감대 수준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나기 때문에 학생들의 디지털 기본 역량은 차이가 많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디지털 기초·기본은 누가, 언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분절적인 교육과정을 지향하지 않나요? 빅데이터일까요, 아니면 관리주의일까요?

현재까지 나온 디지털AI교과서(에 가까운) – I사, C사, W사의 대표 제품을 모두 사용해 봤습니다. 각각의 특성도 있지만 학습의 흐름은 개인 맞춤형 코스웨어를 기반으로 한 문제 풀이 중심의 흐름으로, 강의, 피드백 등 대부분 비슷한 흐름으로 진행됩니다. 2025년에 도입될 디지털 교과서도 수학, 영어, 정보과 중심이니 아마 비슷한 흐름으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좋은 말로 하면 ‘초개인 맞춤형 학습’이지만 초등학교에서 지향하는 통합적인 교육과정에서, 교육과정을 파편화하고 분절하진 않을지 우려가 있습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주제 중심 교과 통합 수업과는 반대로 현재까지 예상되는 디지털IA교과서는 대부분 개인 맞춤형 문제 풀이 중심 콘텐츠로 갈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차이로부터의 배움이라는 특징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공간 안에서 차이에 주목하는 교육학적 차별화와 인공지능을 통해 학습자를 공적, 집단적 공간과 관계들로부터 탈 맥락화하고 제거하는 초개인맞춤형 학습은 구별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전 교육은 과거의 제약에 묶이기보다 미래의 가능성과 밀접히 연결되는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머신 러닝(AI 기반, 알고리즘적 학습 기구)은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창조한다는 가정에 근거합니다. 이는 학생이 틀린 것, 약점과 같은 과거의 학습 수행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학습을 정의하고 학습합니다. 여기서는 학생이 스스로 학교에서 향상시켜야 할 자기 지식, 본인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 우려스럽습니다. 과연 빅데이터인지, 관리주의적 시선인지 제가 학생들의 데이터를 수집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디지털과 AI는 학습에 필요할까요? 행정에 필요할까요?

저는 올해 초등학교 1학년 담임, 학년부장을 맡았습니다. 1학년 입학식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각종 서류를 수합하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학기 초 일주일 동안 수합한 서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2024학년도 개인 정보 수집 · 이용 동의 안내서 ② 학생 건강상태 조사 및 응급처지 동의 안내서 ③ 수익자부담경비 납부 신청서 ④ 2024학년도 학생 기초 조사서 ⑤ 기초학력 진단-보정 시스템 이용을 위한 개인정보 수집·이용 동의서 이 모든 서류를 학생에게 각각 받아야 합니다. 또한 학교장 허가 교외체험학습 신청서, 결석 신고서도 아직까지 종이로 받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 전자로 바꾼 학교도 있고 나이스에서도 일부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지만 우리 학교를 비롯해 대부분의 학교는 여전히 종이서류 중심으로 받고 있습니다.  
저는 디지털과 AI를 학교에 도입한다면 우선 학습보다는 행정에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현장체험학습 관련 서류 – AI를 활용해 대표적인 현장체험학습 장소 2-3개를 선택하면 선호도 조사부터 각종 공문, 수익자부담경비 안내문, 결제까지 한 번에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학습에 AI를 활용하는 것도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겠지만, 우선적으로 행정에 AI를 먼저 도입하고 AI를 통해 확보한 교사의 시간을 학생들 교육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사용하는 것이 우선일 것 같습니다. 디지털은 학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학교를 지원하는 역할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정책 성공의 핵심은 교사입니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입니다. 이 문장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행복한 가정은 한 방향을 바라본다.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바라본다.”, 저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과연 디지털 기반 정책은 교육 구성원들이 얼마나 한 방향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교사입니다. 지금 교육 현장에서 디지털 기반 교육 혁신 관련하여 절대적으로 관심을 두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집단이 누구일까요? 제 좁은 시야로는 대부분 에듀테크 관련 회사, 디지털 관련 학과 교수나 연구원, 터치 교사단, AIADAP으로 대표되는 소수의 ‘능력자’ 선생님 말고는 크게 관심이 없거나 냉소적인 시선으로 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디지털 교육에 대한 공감대가, 실제로 디지털 교육 혁신을 이끌 현장 교사들에게 얼마나 형성되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실증’이 있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디지털 교육을 급성장시킨 계기가 몇 번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가 2000년대 전후 ‘교단 선진화 사업’, 둘째가 2010년대 이후 ‘스마트교육’, 셋째가 2020년 ‘코로나19’입니다. 그 중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누가 뭐래도 코로나19라고 생각합니다. 학교가 코로나19로 인해 받은 상처와 피해도 많았지만 그래도 ‘전 국민이 반강제로 스마트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때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 교육 대체제로서 에듀테크를 사용했다면 이제는 분명히 에듀테크의 효과성이 드러나야 합니다. 단순히 신기한 도구를 체험하는 것이 아닌, 실제로 학생들이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지향하는 ‘깊이 있는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에듀테크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증거를 바탕으로 학교가 에듀테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원 한다면 학생과 교사의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을 위한 역량은 자연스럽게 향상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2021년 「에듀테크소프트랩 적용방안」(한국교육학술정보원, 2021)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경기, 대구, 광주 3개 권역에 실증을 위한 에듀테크소프트랩이 구축되는 등 에듀테크 실증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디지털 기반 교육은 기존 교육을 보완할 때 빛이 납니다.

초등 교실에서 지난 50년 동안 교육 방법·도구 측면에서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교육활동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전 ‘받아쓰기’를 꼽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녔을 때도, 제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동일한 방식으로 받아쓰기는 이루어집니다. 교사가 앞에서 문장을 읽어주면 아이들은 8칸 혹은 10칸 깍두기 노트에 교사가 불러준 문장을 받아 적습니다. 
물론 수십 년간 변하지 않는 교육이라면 그만큼 가치가 있고 기본적이기 때문에 그대로 유지되었을 것이지만, 지금의 ‘받아쓰기’는 결정적인 문제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개별화가 되지 않습니다. 입학 때부터 한글을 익히고 온 학생과 아닌 학생은 어쩔 수 없이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받아쓰기 방법은 학생 수준에 맞는 개별화가 불가능합니다. 둘째로 의외로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가는 ‘획순’입니다. 위와 같은 받아쓰기 방법은 학생들의 획순을 교정해 줄 수 없습니다. 교사가 하나하나 봐주지 않는 이상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기반 교육 환경이라면 이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개인 태블릿 PC로 수준에 맞게 받아쓰기를 선택하고 태블릿PC에 글씨를 쓰면 획순도 기록되니 획순도 교정해 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주로 자음자를 틀리는지, 모음자를 틀리는지, 띄어쓰기를 틀리는지, 문장부호를 놓치는지 등의 세세한 정보도 얻을 수 있습니다.
매우 단편적인 사례이지만 우리가 지향해야 할 디지털 기반 교육은 기존 교육을 디지털로 모두 ‘대전환’하는 것이 아닌, 기존 교육의 한계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도성은 ‘여유’에서 나옵니다.

OECD 학습나침반을 시작으로 학생 주도성이 강조 되고, 2022개정교육과정에서도 주도성이 매우 강조됩니다. 이에 따라 교사 주도성도 주목 받고 있고 디지털 기반 교육 혁신에서도 교사 주도성을 절대 뺄 수 없을 것입니다. 과연 ‘주도성’은 어디서 나올까요? 물론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저는 단연코 ‘여유’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벌어서 하루 사는 사람에게 ‘너의 삶을 주도적으로 개척해라.’ 라고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기반 교육 혁신을 위한 교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주도성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 또한 교사의 여유가 없으면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현재 학교 현장에서 교사에게 주도성을 가질 여유가 있을까요? 물론 교사 개개인의 성향차와 편차가 있겠지만 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디지털 기반 교육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초기에 기기 초기화 및 세팅, 무선 인터넷 확인, 개인정보관리, 플랫폼 확인 및 세팅, 프로그램 설치, 기기 보수, 클라우드 및 소통망 구축 등 하드웨어 측면만 보더라도 기본 세팅을 하는 데 정말 큰 노력이 듭니다. 이 물리적인 환경이 구축되어야만 교사가 주도성을 가지고 디지털 역량을 발휘하여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이 일어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학교에서 해결해야 하는 수많은 일들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진부한 말일 수도 있지만 디지털 교육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해야 하는 부담을 최대한 줄이고 교사가 여유를 갖고 주도성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 주 : 본 원고는 김차명 선생님의 3월 21일 디지털 교육 국회 토론회의 토론자료를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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