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

나름 오래된 멤버라고 생각하는데 생각해보면 교사가 만들어가는 교육 이야기, 세종에서 할 때 의자 나르고 주차 요원한 것 밖에 생각이 안 난다.

본래 어딘가 소속돼 활동하는 것이 잘 맞지 않는 사람이긴 하지만 뜻이 맞는 사람이 많이 있는 이곳에 기여한 적이 별로 없는 거 같아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회가 생겨 연수팀에서 활동을 하게 됐다.

 

2017년 6월 24일 토요일 첫 시작을 하는 날이다.

정성식 선생님의 교육법 이야기와 박순걸 선생님의 승진, 교직문화 이야기로 문을 연다.

 

연수팀에서 연수 계획을 함께 하긴 했는데

의문이 있었다.

도대체 그 중요한 휴일을 반납하며 배우고 이야기를 나눠보겠다고 자발적으로 모이는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그 사람들을 확인하는 날이기도 하다.

 

의문은 의문이고 아침에 일어나 서울까지 기차타고 가는 길은 너무 피곤했다.

기차 안에서의 2시간 반을 모두 잠으로 보냈다.

용산에 도착해 노량진까지의 거리를 짧았다.

연수가 열리는 동작+50까지 가서 연수장에 도착하니 강사가 먼저 와 있었다. 연수 준비에 상당한(어쩌면 전부) 기여를 한 최현주 선생님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찍 온 연수 참가 선생님들도 도움을 주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어느 정도 들어오시자 이동민 선생님이 아이스 브레이킹으로 문을 열었다.

호일을 가져다가 자신의 지금 기분을 나타내보는 일이었다.

호일들이 송곳으로 바뀌고, 나비, 사람, 아령 등 여러 의미를 가진 작품들로 변신했다.

난 호일을 받지 못했다.

사진을 찍으며 난 호일로 뭘 만들었을까를 생각했다.

 

정성식 선생님의 강의가 시작됐다.

교육법과 교사의 역할, 학교에서 해야 할 업무 등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교사는 ( )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

괄호에 들어갈 말은 법적으로는 정해져 있다. 하지만 교사의 생각에 따라 여러 답이 나올 수 있다.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부분은 참 재미있었다.

이동민 선생님이 집강소를 언급했는데 정말 그처럼 울분에 찬 농민군 분위기.

각자의 사정으로 모였고 그것이 절대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학교에서 업무로 인한 갈등, 교육과정 작성 등 페이퍼 워크, 학생들과의 갈등, 학부모와의 갈등 등 교육 활동에 난이도를 더해주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몇몇 선생님들은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하셨다.

사진에는 밝은 모습들만 있다. 웃는 모습에는 셔터를 누르기 참 쉽다. 그 장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록을 남기는 것보다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고, 그 분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무언의 위로를 드리는 일 밖에 없었다.

많은 분이 계셨는데 점심 시간을 넘겨가며 모두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토요일에 그곳에 모인 분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내가 생각하는 실천 교육 교사 모임은(여러 가지 드러난 이유들도 중요하지만) 각 학교에서 실천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교사들을 이어주기 위한 플랫폼이라고 생각한다.

이 분들은 우리 모임에 정말 딱 맞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민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도피해 하루하루를 보내는 교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 역시 그러하듯) 절실한 교사들이 이곳을 찾아왔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남에게 눈물을 보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정성식 선생님의 따뜻이야기와 함께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의 공감이 첫날임에도 마음을 열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혼자 그냥 확대해서 해본다.

 

두 번째 시간은 박순걸 교감 선생님의 이야기였다. 살아온 생부터 승진을 하게 된 과정까지.

열혈 벌떡 교사, 비합법 전교조 교사로서 혁명을 꿈꾸며 투쟁해온 박순걸 선생님은 어떤 이유로 승진을 하게 됐을까.

승진의 과정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사람이 겪은 세세한 이야기는 들은 기억이 없다.

이야기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비슷한 이야기를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공부하던 어떤 교감선생님에게 전해 듣긴 했었지만 아직도 이런 일이 있을 줄이야.

광주에서도 승진 점수가 걸려 있는 곳은 엄청난 경쟁률이 있다.

그래서 내가 동네에서 근무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질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사는 동네가 예전 승진 점수 없을 땐, 교사들이 1~2년 만 근무하고 도망하듯 하는 곳이었다.

대강은 분위기를 알고 있으나 겪은 사람으로부터 디테일하게 듣는 일은 다소 분노를 불러오기도 했다.

이미 승진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80점 대의 1정 점수를 통해 객관적으로 증명한 나는 '뭐 그냥 승진하려고 했어도 성격 때문에 못했겠네.'하고 다시 한 번 속으로 승진을 포기했다.

 

뒤이은 업무 관련 이야기는 박순걸 선생님의 곧 나오지 않을까 생각되는 책에 자세하게 적혀 있을 듯 하다.

궁금한 분들의 많은 구입과 선물, 양도 및 기증을 촉구한다.

 

연수팀으로 진행에 도움을 주기 위해 참가했지만

연수 내용에 몰입하느라 정작 내 일을 제대로 하진 못했다.

그만큼 강사 분들의 강의가 몰입감 있었고, 이야기 나누는 일이 즐거웠다.

저녁에 기차 타고 광주로 돌아가는 길에도 정성식 선생님과 모임, 학교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먼 길을 가는데도 피곤하지 않았다.

 

p.s: 플래시와 삼각대 없이 촬영하다보니 사진의 질이 많이 떨어집니다. 찍히신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드리며 넓은 아량을...

실천교육교사모임